[오교수의 AI 코칭 리더십]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냐!

한국코칭신문 승인 2024.07.10 20:09 의견 0

출처 : 아디다스 홈페이


2022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벤트가 있었다. 바로 4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월드컵이다.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카타르 월드컵은 시작 전부터 몇가지 이슈가 있었다. 대한민국의 16강 진출도 기대되었지만 과연 “축구의 신”이라 불리는 리오넬 메시가 월드컵 우승을 가져갈 수 있느냐 였다. 출발은 좋지 않았다. 사우디 아라비아라는 복병에게 패한 것이다. 언론은 충격적인 보도를 시작했다. 마지막 월드컵이 될지도 모를 메시의 암울한 표정이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퍼진 것이다.

메시는 늘 역대 최고의 선수라는 GOAT(The Greatest Of All Time)이라는 칭호를 받았지만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축구계의 3대 제왕인 유럽챔피언스리그, 발롱도르, 올림픽 금메달을 이미 목에 걸고 있던 그였기에 축구팬들은 더욱 안타까워 했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낙관주의로 난관을 헤쳐나갔다. 대표팀의 최 고참으로 젊은 선수들을 독려했고, 게임이 잘 풀리지 않아도 웃으며 그라운드를 누비고 다녔던 것이다. 하늘은 그의 편이였다. 아르헨티나는 36년만에 월드컵 우승을 거머쥐었고, 리오넬 메시는 축구 역사상 최초의 4관왕(월드컵, 유럽챔피언스리그, 발롱도르, 올림픽)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를 세계적인 축구선수로 만들어준 낙관주의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의 과거로 돌아가 보자.

“내 이름은 리오넬 메시. 내 얘기 한번 들어 볼래? 내가 열한 살 때, 난 내 성장 호르몬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 하지만 난 키가 작은 만큼 더 날쌨고, 공을 절대 공중에 띄우지 않는 나만의 축구 기술을 터득 했어. 이제 난 알아 때로는 나쁜 일이 아주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는 걸.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한동안 TV 전파를 탔던 스포츠 브랜드의 광고이다. 리오넬 메시의 유년 시절에 대해 읍조리며, 잔잔하게 표현되는 영상은 가슴 한구석을 찡하게 만든다. 왜일까? 비밀은 그의 작은 키에 있었다. 신장 168Cm!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선수이자 살아있는 전설이며, 메시아, 축구의 신으로 불리고 있는 그의 호칭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들은 대부분 180Cm의 큰 키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의 유년 시절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키가 작은 것일까?

1987년 아르헨티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적부터 축구를 좋아했다고 한다. 철강 노동자인 아버지가 지역 클럽의 축구 코치였기 때문이다. 9살에 유소년팀에 입단한 메시는 유망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열한살 때 성장호르몬 결핍증(GHD) 진단을 받고 시련을 겪기 시작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매달 1,000달러의 돈이 필요 했다. 하지만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그의 부모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힘들었다. 언제 까지 치료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소속팀에서도 메시를 외면했다. 아직 어린선수의 기량을 보고 모험을 감행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가정형편을 아는 사람들은 축구를 그만두라고 조언을 할 정도였다. 치료를 한다 해도 키가 어느 정도 클지 알 수 없었고, 작은 키는 축구선수로서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집안의 빚은 늘어갔고, 부모님의 시름도 깊어갔다. 하지만 메시는 긍정적 마인드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축구를 포기하는 대신에 자신의 강점이 될 수 것을 찾았던 것이다.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키가 작을 거라는걸 예견했다. 그리고 남들보다 빠르고, 공을 공중에 띄우지 않는 자신만의 축구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2000년 그가 14살 되던 해에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FC 바르셀로나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한 것이다. 그것도 치료비를 모두 부담하겠다는 조건이었다. 악조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긍정적인 마인드와 자신감은 오늘날 그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실제로 그의 플레이 스타일을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는 현란한 개인기 대신 민첩성과 바디페인팅으로 수비수들의 균형감각을 붕괴시킨다. 세밀한 볼 컨트롤과 발에서 70Cm를 벗어나지 않는 그의 드리블은 왜소했던 그가 덩치큰 선수들에게 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갈고 닦은 기술이라는 것이다. 메시의 사례는 긍정적 마인드의 위대한 힘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긍정적 마인드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바로 “자존감(self-esteem)"과 ”태도(attitude)"이다.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코치들은 코치이가 처한 어려운 상황이나 한계에 주목하기보다 그들이 가진 강점과 잠재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메시의 사례처럼 단점으로 보이는 요소도 창의적인 자세로 바라보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둘째, 코칭 과정에서 코치이의 자존감을 높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함양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낙관적 태도는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셋째, 코치들은 코치이가 스스로의 강점을 발견하고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실천 전략을 수립하도록 도와야 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능력과 스타일을 개발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인사이트를 제공해야 한다.

넷째, 코칭 기업은 개개인의 특성과 상황에 맞춰 맞춤형 코칭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제공해야 한다. 일률적인 방식이 아닌 각자의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유연한 코칭 솔루션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코칭 업계는 '불가능은 없다'는 도전 정신을 지향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기존의 한계와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혁신 사례를 발굴하고 공유함으로써, 코치와 코치이 모두에게 영감과 동기를 부여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종합하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불확실성 속에서 코칭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이끄는 것이 코칭의 핵심 가치임을 재인식해야 한다. 긍정적 시각과 창의적 자세로 코치이의 변화와 성장을 지원하는 코치,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혁신적인 코칭 시스템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오상진교수는 프로그램 개발자 출신의 경영학자이다.

그는 통계학을 전공한 뒤 1997년 삼성SDS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그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디지털이라는 개념이 모호한 2000년대 초반 삼성미술관에서 디지털 콘텐츠개발을 했으며,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삼성그룹의 HR전문가로 성장해 갔다. 이후 제일기획에서 창의, 혁신의 분야에 매진하며 창의적 인재의 육성과 창의적 조직에 대한 전문 역량을 키워 나갔다. 약 19년간의 조직생활을 마감하고 지금은 국내 최초 경영전문대학원인 서울과학종합대학원의 경영학과 교수를 거처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인적자원경영 MBA과정 주임교수로 있으며, 강의와 KCI 등재논문이 41편으로 다양한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통계학 전공을 기반으로 학교에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삼성그룹에서의 HR전문역량을 바탕으로 기업의 리더와 조직구성원에게 필요한 역량에 관심이 많다. 제일기획에서의 창의, 혁신과 디지털 경험은 최근 기업에 화두인 AI와 블록체인 기술을 경영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기업에 컨설팅과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경영학자로서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조금 특별하다. 데이터와 기술을 기반으로 분석적 사고를 하고 있지만, 동시에 사람을 중심으로한 직관적 사고를 즐겨한다. 지금까지 그의 저서로는 “아웃오브박스”, “나는 왜 괜찮은 아이디어가 없을까”,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AI 리더십" 등이 있다.

현재 그는 한국코치협회 명예코치, 해군발전자문위원회 HR혁신분과위원, 재단법인 한국스마트농업연구원 이사이자 교육 및 인큐베이팅 센터장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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